외제차 벤츠의 깊은 역사 칼 프리드리히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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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차 벤츠의 깊은 역사 칼 프리드리히 벤츠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는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독일의 엔지니어 칼 프리드리히 벤츠Karl Friedrich Benz는 자신의 이름을 따 벤츠 자동차를 설립했다. 그는 이미 1879년에 2행정 내연기관으로 특허를 출원했던 걸출한 엔지니어였다. 1884년에는 여기에 세계 최초의 전기점화장치를 장착했고, 이를 바탕으로 1886년 1월 29일,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Patent Motorwagen을 만들어냈다(국내에서는 영어식으로 ‘페이턴트 모터카’라 부른다). 차 이름은 ‘벤츠의 특허받은 모터 수레’라는, 무척 솔직담백한 뜻을 담고 있었다.
 
사상 첫 가솔린 엔진 자동차인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지난 2013년 공개한 F셀 로드스터 콘셉트는 파텐트 모토바겐을 향한 오마주다.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은 무게 265킬로그램의 차체에 최고 출력 0.9마력을 내는 954cc 1기통 가솔린 엔진을 올린 2인승 삼륜 자동차였다. 변속기는 수동 1단이며, 최고 속도는 시속 16킬로미터가량이었다. 같은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보다 몇 달 앞서 만들어낸 역사상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였다.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두고 펼쳐진 자동차 강국들의 자존심 경쟁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척 지루하게 이어져온 게 사실. 일종의 원조 논란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에서는 베로나 파두아 대학 교수였던 엔리코 베르다르디Enrico Bernardi가 1884년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너무 빠르고(시속 18킬로미터였다) 먼지가 많이 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판매가 중단되고 말았다. 미국인들은 조지 브레이튼George Brayton의 1876년 자동차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직한 엔지니어였던 브레이튼이 특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에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발명가 타이틀을 놓치고 만다.
 
프랑스인들은 아직까지도 에두아르 들라마르E. Delamare가 최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무척 안됐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근대적 가솔린 자동차는 분명 칼 벤츠의 파텐트 모토바겐이다. 탁월한 엔지니어였던 칼 벤츠는 천재적인 기술력 못지않게 여복이 많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여복은 어머니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두 살 때 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살림이 무척 궁핍해졌으나,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걸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 덕분에 칼 벤츠는 그래머 스쿨을 무사히 졸업하고 칼스루에의 전문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의 여복은 아내 베르타 벤츠Bertha Benz를 만나면서 만개한다. 칼 벤츠의 사업은 초기에 무척 좋지 않았다. 늘 재정난에 쫓겨 공장과 작업실, 심지어 공구들까지도 압류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파텐트 모토바겐을 만들어냈지만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풀 죽은 남편을 지켜보던 베르타는 1888년 8월 어느 날, 남편의 작품 파텐트 모토바겐에 두 아들을 태우고 만하임에서 친정이 있던 포르츠하임까지 장거리 운전에 도전했다.
 
거리는 총 106킬로미터. 지금 기준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모험이었다. 한여름 무더위와 먼지 가득한 비포장도로, 수시로 과열되는 엔진, 걸핏하면 끊어지는 체인 등을 이겨내며 하루를 꼬박 달린 끝에 저녁 무렵 마침내 완주에 성공했다.
 
포르츠하임에 도착한 그녀가 칼 벤츠에게 전보를 보내던 순간, 벤츠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최초의 주행 테스트를 통해 베르타 벤츠는 역사상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이자 첫 여성 운전자로 이름을 남겼다. 또한 무심하던 비평가들과 언론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 역할까지 해냈다. 이에 힘입어 벤츠는 1893년 두 번째 작품이자 세계 최초의 양산차 빅토리아Victoria를 출시했다.
 
그 이듬해에는 서스펜션과 헤드램프까지 갖춘 세 번째 모델 벨로Velo를 만들어냈다. 이 차는 특히 프랑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파리 도심이 온통 벨로로 가득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불과 10년 사이 공장 직원이 열 배나 늘어날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칼 벤츠는 이사진과 갈등을 빚은 끝에 결국 자신의 회사를 떠나고 만다.
 
칼 벤츠(좌)와 고틀리프 다임러(우)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평생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1906년 벤츠는 아들과 함께 칼 벤츠 자동차회사Karl Benz Sohne를 설립한다. 회사의 기반을 새로 닦은 벤츠는, 1926년에 다임러와 합병해 다임러-벤츠로 재출발한다. 평생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는 가까운 곳에 살았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함께한 적은 없었지만, 두 거인의 이름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회사와 브랜드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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