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워런 버핏은 월스트리트에서 살지 않을까?
본문 바로가기

책소개/경제경영

왜 워런 버핏은 월스트리트에서 살지 않을까?

고층 빌딩, 야자수,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진 뉴포트 비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인구 9만 명의 작은 해변 도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항구가 있고, 시내에는 둘러볼 만한 수많은 박물관이 있다. 배를 빌려 고래 관광을 할 수 있으며, 해변에서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매년 열리는 뉴포트 비치 국제 영화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다.



뉴포트 비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세계 최대 투자 회사 중 하나인 핌코Pimco: Pacific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의 본사가 있다. 1971년에 설립된 핌코는 세계적인 보험 금융 서비스 그룹 알리안츠Allianz의 자회사이다. 주로 채권에 투자하며 관리 자산만 2조 달러(2200조 원,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여섯 배)가 넘는다. 핌코의 창립자이자 최고 투자 책임자인 빌 그로스Bill Gross는 ‘채권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증권가의 전설이 되었다. 수많은 언론 매체가 핌코와 빌 그로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빌 그로스를 압도하는 현존 최고의 투자자가 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다.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회장이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다. 그는 다섯 살 때 껌을 팔아 처음으로 돈을 벌었고 여섯 살 때는 코카콜라 여섯 병을 25센트(280원)에 사서 한 병에 5센트(60원)에 팔아 20퍼센트의 수익을 남겼다. 워런 버핏은 현재 40여 년 전 3만 1500달러(3500만 원)에 구입한 집에서 검소하게 생활한다.
집을 구입했을 무렵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 회사를 한 주당 18달러(2만 원)에 인수했다. 이후 투자 회사로 변한 이 회사 주식은 현재 한 주당 17만 달러(1억 9000만원) 이상에 거래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되었다. 핌코와 마찬가지로 버크셔 헤서웨이 본사도 월스트리트에서 멀리 떨어진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 있다.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은 IT 버블 시기에 IT 관련 주식을 단 한 주도 사지 않았다.

빌 그로스와 워런 버핏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성격, 경제 상황, 합리적인 투자 원칙을 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운도 따라 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두 사람 모두 월스트리트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고급 정장을 입은 기업인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비즈니스를 이야기하고 주식, 돈, 의견을 교환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
어쩌면 월스트리트의 약점은 쉬지 않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들은 월스트리트가 쉬지 않는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 시장의 맥박이 느껴지는 곳, 새로운 트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 있고 싶어 한다. 앞선 뉴스, 중요한 인맥, 역동적인 분위기 등 이 모든 것이 사업에 도움을 준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는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집단의 심리 관점에서는 잘못된 선택이다.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믿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집단의 생각, 믿음,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빌 그로스와 워런 버핏의 성공 비결 가운데 집단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이 중요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은 월스트리트에서 멀리 떨어져서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축제나 축구 경기 혹은 대규모 행사에 참여해 본 사람은 흥분한 군중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껑충껑충 뛰게 된다.
와인과 구텐베르크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 마인츠에서는 매년 11월부터 100여 일 동안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의 절정은 로젠몬탁이라고 하는 마지막 주 월요일인데 대규모 가장행렬이 벌어지고 모든 사람이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는다. 언젠가 나는 이 기간에 다른 일 때문에 마인츠에 있으면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집단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열광하는 사람들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IT 버블이라는 축제가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졌을 때, 100퍼센트 수익을 약속하는 주식 전문가들과 흥청거리는 투자자의 모습을 멀리 떨어진 오마하에서 바라본 워런 버핏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워런 버핏이 거리 두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젊은 금융인들과는 다른 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적・문화적・세대적 거리감 덕분에 집단의 유혹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만약 월스트리트에 계셨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셨을 겁니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좇았을 테니까요.”
워런 버핏의 아들 피터의 말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펀드 매니저 역시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동료들과는 가급적 경제나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의식적으로 집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어야 한다. 수시로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수익률을 계산하고, 매일 주가를 비교하고, 유망한 종목을 추천하는 글을 찾아 읽는 등 집단 광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아쿠아마린 LLC 헤지펀드의 운영자인 가이 스파이어Guy Spier는 스스로 정한 규칙에 만약 고수익 투자가 주는 흥분, 짜릿한 긴장감, 모험 등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여러 곳에 나누어 투자해야 한다.


일부는 노후를 대비해 안전한 자산에 묻어 두고, 일부는 시장의 관심을 받는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대신 이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상 집단의 광기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아야 한다는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폴 앤드리아센Paul Andreassen의 실험은 거리두기 전략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준다. 대학생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몇몇 주식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주었다. 어떤 주식에 투자할지 고르게 하고 일정 기간 투자를 하게 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주가 변동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주식과 관련된 분석 기사가 담긴 금융 전문지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주가 변동 외에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보인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접한 두 번째 그룹은 그들이 얻은 정보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고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모든 정보가 항상 유용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오히려 위험하다. 어떤 상품에 투자를 했다면 어느 정도 무심한 편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