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포드 자동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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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자동차

외제차 포드 자동차의 역사

15세 때 기계공이 되기로 결심한 헨리 포드는 기계공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후 1903년 마흔에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다. 당시 유행하던 수제작 고급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동차가 부자들의 재력이나 신분 과시용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반발심을 드러냈다.

 

 

"엄청나게 값비싼 자동차가 잘 팔리는 건 소비자들이 만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계속 그렇게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가격을 낮춰 새로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고급차 시장은 너무 한정적이다.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시대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다."

헨리 포드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동차 1대를 소유한 시대가 되었다. 포드는 자신의 말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실천으로 옮겼다. 1908년 포드가 만든 모델 T는 859달러라는 가격표에 시장에 나왔다.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2기 통 엔진을 장착한 모델 T의 가격은 당시 20,00달러를 넘나들던 다른 자동차들에 비해 분명히 싼 가격이다.

 

 

매달 2,000대 이상씩 팔리는 모델 T의 판매가 늘어나자 포드는 가격을 440달러로, 그리고 다시 295달러로 낮췄다. 값비싼 고급차로 극소수 부자들에게 어필하던 자동차산업 구조는, 모델T로 인해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 자동차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1915년 모델 T는 100만 대 생산을 넘어섰고 1924년에는 1,000만 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1927년에는 1,500만 대를 거뜬히 넘어섰다.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모델 T는 자동차산업에 현대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의 시작을 알렸다. 바로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이다. 이 시스템을 자동차 제작에 처음 적용한 모델 T의 새시 조립 시간은 1대당 12시간 30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줄어들었다. 근로자들의 노동시간도 10분의 1이 줄어들었고, 원가절감에 힘입어 295달러라는 혁신적인 가격 책정이 가능해졌다.

 

포드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컨베이어 시스템 도입 이듬해 1914년 포드의 모델 T 생산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해 연간 생산대수 24만 8,000대였다. 포드는 이 차 하나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48퍼센트를 장악했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도 혁신적으로 바뀌었다. 컨베이어 벨트 도입에 반발한 직원들이 회사를 이탈할 움직을 보이기 시작하자 포드는 근로시간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바꾸고 일당을 5달러로 올렸다.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의 평균 일당이 2달러 34센트였으니 포드는 두 배 이상의 임금을 제시한 것이다.

 

이후에도 포드는 근로자들의 일당을 꾸준히 올려 1929년에 9달러까지 이르렀다. 포드 공장 앞에는 언제나 일자리를 구하려는 구직들이 몰려들었다. 포드는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달리 흑인과 여성, 장애인도 차별 없이 고용했다. 포드는 근로자 복지와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던 사람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포드는 노동조합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럼에도 모델 T로 미국 자동차산업을 지배했던 당시 포드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이었다. 아마도 포드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면 회사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