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페르디난트 포르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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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자동차

외제차 페르디난트 포르쉐 역사

페르디난트 피에히 Ferdinand Piech는 열네 살 때부터 전기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25세 때 이미 파리 국제박람호에 자신이 만든 차를 출품했다. 1906년에는 자신이 설계한 자동차를 몰고 장거리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23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로 옮겨 슈퍼차저 supercharger 개발을 진행했다. 1931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포르 엔지니어링 사무소를 오픈한다.

 

히틀러의 요구로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1938년 카데프Kdf ( 기쁨 속에 솟아나는 힘 )를 만들었다. 이 차는 나중에 비틀 Beetle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훗날 포르쉐 브랜드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포르 박사는 아들 페리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포르 디자인 회사를 세우고 포르 브랜드의 첫차 356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비틀의 공랭식 4기통 수평대향 1,131cc 엔진을 차체 뒤에 단 356은 구조적으로 무거워 스포츠카로 적절하지 않았다. 큰 문제점을 알고 있던 자신의 첫 차를 끈질기게 개선해나갔다. 결국 356은 1950년 르망 24시간 레이스 우승을 차지하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후 1964년 911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결국 페르디난트 포르쉐포르 박사는 르망 우승 직후 1951년 세상을 떠났다. 포르박사가 남긴 기술력과 고집은 이후 포르의 전통이 되었다. 첫 차 356과 간판스타 911의 무게 배분 결함도 수평대향 엔진과 끊임없는 디자인 개선으로 극복했다.

 

 

보통 아래위로 움직이는 피스톤 운동과 달리 수평대향 엔진의 피스톤은 서로 마주 보고 왕복운동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복싱 선수의 시합 같다고 해서 '복서 엔진'이라고 부른다.

 

1969년에 역사상 가장 위험한 스포츠카로 불리는 917을 발표했다. 이 차는 엔진 성능과 공기역학 등 모든 면에서 한계를 넘나들었다. 당시 "지구상에 917을 제대로 운전할 수 있는 레이서는 페드로 로드리게스 Pedro Rodriguez와 요 지르트 Jo Siffet 둘 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운전하기 어려운 자동차였다. 출발하고 단 2초면 시속 100킬로미터에 도달하는 폭발적 성능의 917은 그 자체로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포르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주었다.

 

1986년에는 959로 지옥 레이스라 불리던 파리에서 다카르 랠리 우승을 거머쥐었다. 959는 고성능 SUV의 독무대이던 파리에서 다카르 랠리에서 우승을 거둔 최초의 정통 스포츠카였다. 1989년에는 신형 스포츠카 911 카레라 Carrera 2를 통해 수동변속 기능을 갖춘 팁트로닉 tiptronic 자동변속기를 선보였고, 1996년에는 엔트리 모델인 미드십엔진 스포츠카 박스터 Boxster를 발표했다.

 

포르는 기술적으로는 고집불통이었지만,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면 다른 회사 생산방식을 기꺼이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2002년에는 마니아들의 엄청난 비난을 무릅쓰고 최초의 SUV 카이엔 Cayenne을 발표했다. 비난과 우려와 달리 카이엔은 오늘날 포르의 캐시카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포르는 현재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