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도요타Toyota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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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자동차

외제차 도요타Toyota의 역사

1980년 전 세계 언론은 일제히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급부상 소식을 전했다. 도요타와 닛산 Nissan이 포드를 제치고 GM에 이은 세계 2, 3위 자동차 브랜드로 뛰어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자동차 강국 유럽과 당시 이미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자 최대 생산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미국 자동차 업계는 일본을 슬슬 견제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는 2009년, 미국에서 급출발 사고로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 사태에 맞닥뜨렸다. 렉서스 차를 타고 가던 일가족 네 명이 가속페달 이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게다가 당시 긴박한 911 신고 전화가 뉴스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되면서 도요타는 엄청난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여론의 못매를 맞고 결국 가속페달 문제를 인정한 도요타는 무려 1,000만 대에 대해 리콜 조치를 단행했다.

 

도요타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론과 파산설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보란 듯이 북미 베스트셀링 브랜드 지위를 회복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도요타는 모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튼튼한 회사였다. 설립 이래 최악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도요타가 어떤 회사인지를 보여준 최고의 기회가 되었다. 오늘날 도요타는 연간 10,00만 대 판매 시대를 열며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도요타의 기반을 닦은 인물은 일본의 발명왕으로 불리던 도요타 사키 치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G형 자동 방직기 특허 기술을 영국에 판매하고 받은 10만 파운드로 1933년 도요타 자동직기 제작소를 설립했다.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합류한 장남 키이치로는 회사 내에 자동차부를 설치하고 자동차 엔진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1936년, 손수 개발한 엔진을 장착한 승용차 AA를 내놓았다. 그 이듬해, 도요타 자동차가 공식 출범했다.

 

도요타는 설립 이래 수차례 위기를 자체 전략과 외부 환경 등에 힘입어 극복해내며 1966년 닛산을 앞질러 일본 최대의 브랜드로 올라선다. 이때 도요타의 결정적 무기는 당시 새로 출시했던 소형자 코롤라 Corolla였다. 1965년 48만 대 수준이었던 도요타의 연간 생산 대수는 코롤라 출시와 함께 급증하기 시작해 1968년에는 110만 대를 넘길 정도였다.

 

1970년대 초 석유파동 속에서 코롤라의 글로벌 판매는 더더욱 늘어났고, 1983년에는 자동차 역사상 세 번째로 누적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했다. 또 2007년에는 35,00만 대를 넘어서더니 지난 2013년에는 4,000만 대까지 뛰어넘었다. 데뷔 이래 지금껏 46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평균 40초 동안 한 대꼴로 팔린 엄청난 기록이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종 코롤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계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도요타는 대중 자동차 회사로서 처음으로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 Lexus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세계 최초로 8단 자동 기어를 양산화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시아 자동차 브랜드로서 보기 드물게 슈퍼카급 성능과 가격을 인정받은 LFA를 개발해냈다. 혁신적인 생산방식 JIT(Just In Time) 시스템을 고안해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1997년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Prius를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하이브리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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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역사에서 시작해 디자인, 문화, 테크놀로지, 전기자동차까지 아우르며 자동차의 어제, 오늘, 미래를 50가지 키워드로 풀어내는 책. 전작 <두근두근 자동차 톡>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을 뛰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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